관계에 대하여.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것 같던 아들이 중2가 되면서 아주 낯선 전혀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되었다. 품 안에 자식이란 말을 실감한다.  더 이상 품 안으로 들지 않고 반항하고 거절하고 거리를 두는 것이 상처가 된다. 

부정당하는 느낌은 곧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이라 상처다. 

나도 말하기 싫고, 곁에 두기 싫고, 더 이상 안고 싶지 않고, 품 안에 들이고 싶지 않다. 

아 문득 나란 인간이 가지고 있던 그 부모됨이라는 것도 이토록 가벼운  사랑이었구나. 나도 그 절대적이고 맹목적이며 희생적인 아가페적인 부모됨의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구나. 나는 철저히 이기적인 놈이었구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만큼은 철저하게 이타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교만이었다. 

박변. 객관식, 주관식 공부하기.

 







      공부 정리. 2차 중심
  •  민법원론 > 민사소송법 (이시윤) > 형법(이재상) > 형사소송법(이재상) >부동산등기법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지. 하지만.

막상 무언가를 해 보겠다고 호기롭게 덤벼보지만 잽 한방에 휘청거린다. 

마이클타이슨이 이런 말이 했다지.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처맞기 전까지는."
"Everyone has a plan 'till they get punched in the mouth."

간혹 마구 휘두르는 주먹이 살짝 상대의 빰을 가볍게 때리면 '이거봐라' 교만하다. 금방 떨어져버린 체력과 맞받아친 상대의 스트레이트 잽 몇 방에 금방 그로기 상태가 되어버린다. 

유리잔같은 멘탈과 저질스러운 체력을 확인할 뿐이다. 

이 정도면 전략이 쓸데없다. 

주먹을 뻗는 기본기부터 매일 줄넘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꼭 이렇다. 시작한지 8개월이 넘었지만 기출문제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한다. 본격적인 링에도 오르지 못한 상태이다. 상대는 너무 거대하고 제압불가능한 덩치이다. 

어떻게 할까. 주저 앉을까. 

복싱을 시작하면서 시합부터 하겠다. 스파링도 아니고 이런 놈들은 딱 쳐 맞아봐야 한다. 

하루에 10시간도 채 공부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을 치르겠다  같은 말이다. 


나는 심판자가 아니다.

사람은 설득되는가? 아니 전혀. 절대로 설득되지 않는다.
만약 설득된다면 그사람은 이미 설득되어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설득되는 것이다.

설득은 존재와 마찬가지이다. 설득된다는 것은 나와 같은 생각과 행동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존재로서 변화되지 않는 이상 우리는 서로 설득되지 않는다.

끝까지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이나, 예수를 메시야가 아니라고 말하는 유대인들에게
유일 단일신론의 무슬림들에게 삼위일체의 신비를 설명한다고 그들이 논리적으로 설명한다고 설득되는것이냐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세상은 설득되지 않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설득 불가능성을 모른체 설득하고자 하는 그 무모함과 한계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심판자로 행세하려는 것이다.

서로가 심판자로 있다는 것은 서로 죽이는 것이지 않는가.

우리는 심판자가 아니다.

설득되는 존재가 아니다. 심판자의 자리에서 내려와라. 그리고 조용히 심판자에게 이르라.

네가 심판자가 되지 마라. 그것은 고통이다.

어줍짢은 조언은 하지 마라.

특히 부부간의 문제에 대하여는 절대로 함구해야 한다.
내가 특별한 위치에서 부부상담 전문가가 아니라면 절대로 해서는 안될일이다.
어느 한쪽 누구를 편들지 않았다고 해도 어느 한 쪽은 상대편만 편들었다고 오해를 하기 마련이다.

 나로서는 너무 억울하다 하지만 어쩌랴. 그렇게 들었다고 하는데 무엇을 변명하랴.

힘겹게 그 한쪽의 처지를 이해하고, 설명하고, 동감하였지만 그러한 모든 것들은
한마디 어줍짢은 조언.. "앞으로는 그런 말 하지 않도록 해 보아요" 그 말만 서운해서.
그 많은 동감의 말들은 연기처럼 없어지고 돌덩이 같은 오해만 남았다.

어줍잖게 충고질 하지 말자. 그저 고개만 끄덕이자.

좀 나도 상처가 되는 건. 앞으로 무슨 좋은 일도 대화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피해자요. 당신은 가해자요. 그 메아리 같은 매 순간의 매질에 당해낼 억울한 가해자(?)는 몇이나 될까.

마음이 괴로우니 몸이 병드는구나.

우울.


이 우울감을 넘어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 힘들다.

우울감 속에서 건져낼 진실한 단어는 하나도 없다.
적어도 위선적이지는 않아야지.

사람을 만나되 나의 말을 하지 않으련다.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일터.
여물지 않은 말들이 나오는 통에 나는 우울하고야 만다. 

독서만큼 유익한 것은 없으리라

독서만큼 유익한 것은 없으리라. 
무슨 책이든지 읽는다는 것은 자기반성과 함께 어떤 깨달음들을 준다. 
물론 능동적인 책읽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능동적인 책읽기란 생각하며 읽는 것이다. 

생각하며 읽는 다는 것. 
이것은 필연 자기반성을 하게 하고 그 과정 가운데서 
새로운 깨달음을 불러 일으킨다. 

어떤 종류의 책이던 상관이 없다. 

사회과학이던, 소설이던, 하물며 sns에 올라온 글이라도
읽는다는 것, 생각하며 읽는 다는 것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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